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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 씨발.. 아, 알았어.. 제발.. 쪼, 쪼지만 마라. 응?
  말도 통하지 않을 녀석한테 본능적으로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몸집 때문이기도 했고, 그 매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부리가 충분히 나를 쪼아먹고도 남을만한 뭔가를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음에도 나는 순간 내가 이 거대한 새 한 마리에게 말을 건넸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어버렸다. 동시에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고 나 자신에게 속으로 한 번 더 물어보았다. 당연히 답은 안 나온다. 주변에 누가 말해줄 사람도 없다.
  새의 주변에는 알껍질의 파편 같은 것들이 쌓여있었다. 그걸 보고서 이 새가 알에서 막 부화했구나 하는걸 혼란스러운 와중에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의문 투성이였다. 왜 이토록 큰 새가, 어쩌다가, 하필이면 내 집에, 그것도 제일 좁은, 그리고 제일 신경 쓰는 방에 떡하니 있는 것이냐고. 여전히 답은 안 나온다. 주변에 누가 말해줄 사람도 없다.
  방을 나와 문을 재빨리 닫았다. 나는 일단 안심부터 했다. 어쨌거나 먹히지는 않았다. 막 부화한 새가 바로 먹이를 쪼아먹고 그러는지는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다시 방에 들어갈 때는 어떻게든 방어할 뭔가를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현관문을 코 앞에 두고 왠 짹짹거리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리나 했는데 알고보니 그 새는 내 집의 가장 소중한 방에서 정말 어떤 인과관계도 찾을 수 없는 모습으로 떡하니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크기는 또 어찌나 그렇게 큰지 아무리 제일 좁은 방이라고 해도 그 방을 다 채워버리는 몸집이 차마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가뜩이나 알에서 막 부화한 게 이 정돈데 시간이 지나면서 더 비대해질 몸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제서야 저 새를 어떻게 밖으로 빼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민은 고민으로 끝내야 했다. 방법은 어찌됐든 저찌됐든 하나 뿐이니까.
  내 집은 이 아파트에서 제일 위쪽의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고, 그러므로 그 방에서 벽만 어떻게 잘 허물어준다면 새가 나갈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벽을 허물 마땅한 방도도 없고 설령 방법을 찾아서 힘들게 노가다 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걸 새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겠느냐는거다. 아니, 그 전에 벽을 허문다고 하면 나중에 다시 메꾸는 건 또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럴 바엔 벽보다는 이 거대새에게서 해결책을 찾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방법이 하나 더 생기긴 했지만 이건 도저히 시도해 볼 엄두조차 안 난다.
  그 자리에서 새의 목숨을 끊어버리자. 그리고 경찰이든 어디든 신고해서 사연을 얘기하고 뒤처리를 맡기는 것이다. 말로는 쉬워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결심을 하고 부엌에서 식칼을 빼들고 와 그 커다란 새에 맞서서 단칼에 목숨을 끊어버리는게 쉽게 진행될 것이라곤 상상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RPG에서 최종보스 레이드를 뛰는게 훨씬 더 쉬울 것이다. 그건 도중에 죽어도 몇 번이고 재도전이 가능하니까. 게다가 내 손으로 누군가를 칼로 찔러 죽이는 것도 영 개운치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저렇게 계속 놔둘 수도 없으니 여러모로 참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지금 필요한 건 전화. 경찰부터 불러야 한다. 나는 전화를 찾기 위해 거실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나는 이내 복도와 거실 사이에 있는 부엌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허망한 표정으로 뒤돌아 그 방의 문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집전화 저 방에다 옮겨놨는데.
  거실에서 전화를 받기가 귀찮답시고 침실로 옮긴게 며칠 전이었다. 참말로 그지같은 타이밍에 순간 소름이 돋아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다.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전에서 하나도 바뀐게 없는 현실임을 느끼자마자 나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방 안에 들어가 큼지막한 새의 견제를 받으며 전화를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거기까지 시도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
  나는 집 밖으로 나가 옆집 문을 두드렸다. 사정을 얘기하고 전화를 잠시 빌려서 경찰에 연락할 셈이었다.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서 잘은 모르지만 30대 중반의 여성이 살고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얼마 안 가 전형적인 아줌마 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저 옆집 사람인데요. 잠시 전화 좀 쓸 수 있을까 해서요."
  "왜요?"
  상당히 언짢아하는 목소리다. 달게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차가운 반응이었다. 옆집 사람이란 말을 괜히 했나 싶어 조금 후회감도 들었다.
  "그런게 있습니다. 몇 분이면 되니까 잠시만 좀 쓰면 안 됩니까?"
  "이유를 대보라니깐요. 무슨 일이신데요?"
  말투도 영 아니꼽고 내 집에 새가 있다는 말을 굳이 또 해야 되나 싶어 나는 딱히 할 말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물쭈물 서있었다. 그 때 도어락 푸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문이 열렸다. 여자는 얼굴만 쑥 내민 채 불청객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일이시냐구요?"
  "제 집에 문제가 생겨서 경찰 좀 부를라 그럽니다. 됐어요?"
  차마 방에 존나게 큰 새가 있다고는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얘기해도 믿지 않을 눈치였다. 잠시만 전화 좀 쓰겠다는데 이 여자는 뭐가 그리 믿을 구석이 못 된다고 아직도 못마땅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때 짹짹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문만 닫고 왔어도 이 새소리가 내 집 어딘가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직감할 일은 없을텐데 여자는 바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새 키워요?"
  "키우는 건 아니고, 불청객이라서 그냥 좀 내쫓을려는 겁니다."
  내쫓으려 한다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말해놓고 뒤늦게 후회로 가득찼다. 아니나다를까, 여자는 단박에 알아챘다.
  "뭐야. 설마 경찰 부르려는 이유가 그거 때문이에요? 그깟 새 한 마리 쫓아낼려고 경찰까지 부르겠다는거에요? 참 내, 그렇게 간이 작아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네."
  "이봐요."
  "왜요?"
  "궁금하면 직접 와서 보시던가요. 왜 내 힘으로 못 쫓아내나. 알고 나면 전화 빌려줄겁니까?"
  "그렇게 해요, 그러면. 대신 앞으로 이런 일로 남의 집 찾아오는 건 좀 삼가주세요. 한가하지만은 않으니까. 근데 집전화랑 폰 둘 다 없어요?"
  "집전화 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새랑 같이 있어요. 이미 망가졌을지도 모르겠고."
  할 말은 다 끝났다. 여자는 아직도 뭔가 미심쩍은지 나를 무슨 동네 땅거지 보듯이 쳐다봤다.
  "별 시시껄렁한 일로 남의 집을 다 가보네. 잠시만 기다려요. 앞치마 좀 걸어놓고 올테니까."
  여자는 들어가서 한 3분 정도는 나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앞치마를 걸어놓으러 갔다가 다른 급한 일이 생기기라도 했나 싶었지만 그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애초에 앞치마 같은건 두르지도 않았는데(얼굴만 쑥 내밀어서 둘렀는지 안 둘렀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걸 핑계 삼아서 갈까말까 고민할 시간을 벌어두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안 나오는건가 싶었지만 그녀는 얼마 안 가 다시 문을 열었다. 고작 옆집 가는건데 여자는 열쇠로 문을 잠글려고까지 했다. 도어락까지 걸어놓은 주제에 뭐가 그리 걱정된다고 열쇠까지 동원하는건지 보는 내가 다 답답해서 입을 열어보려 했으나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먼저 가요. 왜 멀뚱멀뚱 서있어요?"
  여전히 신경쓰이는 말투 때문에 순간 짜증나서 대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내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이것저것 잡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둔탁한 게 떨어지는 소리, 와장창하고 깨지는 소리, 뭔가가 찢기는 소리 등이 전혀 조화롭지 않게 겹쳐지며 나로 하여금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바로 이어서 들어온 옆집 여자는 이게 무슨 소리냐고 혼잣말로라도 할 수 있을 법한데도 그저 말없이 따라오고만 있었다. 그 모습은 어떤 것을 봐도 놀라지 않으리라는 나름대로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문제의 문 앞에 섰다. 그 불안한 잡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고 그 소리의 원천이 이 방이라는 것에 확신을 느끼자마자 손잡이를 탁 잡았다. 불안해 뒤질 것 같았다. 이 새끼가 내 방을 얼마나 무참히 망가뜨려놨을지 걱정돼서 죽을 지경이었다. 끊이지 않는 그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기어코 손잡이를 돌려 문을 확 밀어젖혔다. 그리고 드러난 방의 모습을 한동안 보다가 속으로 외쳤다.
  젠장할. 이건 내 방이 아니야!
  상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하게 어질러진 방을 보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리에서 느낀 그대로 이것저것 떨어지고 깨진 것들은 물론이요, 날카로운 양 발의 공격을 받아 제대로 뜯어져나간 푹신한 침대와 부리의 공격으로 떨어져내린 은은한 색상의 미니커튼, 그리고 아직도 이곳저곳에 몸을 치대며 내 방을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거대새까지. 차례대로 훑어보고 나는 기어코 입을 열어 내뱉고야 말았다.
  "이런 씨ㅂ…"
  "끼야아아아아악!"
  난데없는 여자의 비명에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음에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인간은 안 놀랄 것처럼 도도하게 따라오더니 결국 이렇게 까무러치는구만. 속으로 꼴 좋답시고 바라보다가 다시 방 안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다가 멈춰선 그 거대새와 눈을 마주쳤다. 비명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여자도 시선을 느꼈는지 비명을 멈추고 옆에서 가만히 있었다. 새는 잠시 우리 둘을 멍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짹짹거리며 문 쪽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잽싸게 왼쪽으로 피했고, 여자는 바로 앞에서 튀어나오는 새의 부리를 보고 놀라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끼야악!"
  "아이씨, 좀 조용히 해봐요!"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새도 짜증나고 바로 앞에서 비명만 질러대는 여자도 짜증나서 나는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새는 비대한 자신의 몸 때문에 문 밖으로 나오지는 못하고 부리를 들이밀어 이리저리 헤집기를 반복했다. 혹시라도 문 주변에 금이 쫙 가서 무너져내리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났지만 다행히 아직 그 정도의 힘까지는 못 내는 듯 했다. 어쨌든 이 정도면 여자도 충분히 문제점을 인식하고 전화를 빌려주려 할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어느새 신발을 신고 나가려 하고 있었다.
  어? 그냥 가면 안 되는데?
  진짜 저대로 그냥 가버리려는건가 싶어서 순간적으로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다. 나는 여자를 잡기 위해 있는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옆에서 짹짹거리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타격음이 났다.
  톼악!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작정한 거대새의 부리가 내 바로 옆까지 접근하자 나는 순간 놀라 철퍼덕 소리를 내며 기세 좋게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정신차리고 앞을 봤을 때 이미 여자는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아, 제발! 왜 갑자기 말 없이 튀어나가고 그러냐고!
  나는 거기서 굴하지 않고 재빨리 일어나서 슬리퍼를 신고 옆집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주변은 어찌나 조용한지 탕탕거리며 뛰쳐나오는 내 발소리가 복도를 크게 울려댔다. 바로 옆집에서 발을 간신히 멈추고 문을 쾅쾅 두드렸다.
  "이봐요! 전화 좀 빌려달라고요! 이봐요!"
  그렇게 한참을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나는 문에서 손을 떼고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주변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서 방금 전까지의 모든 일이 엄청나게 비현실적인 허상처럼 다가왔다. 지금이라도 모든 게 없었던 일이었다면, 하고 내심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짹짹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씨발!"
  옆집 문을 세게 걷어찼다. 발가락에 적잖은 충격이 왔지만 신경쓰이지 않았다. 이렇게 몇 번을 더 걷어차도 그 인간은 전화 빌려주는 건 물론이고 문조차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고 길게 뻗어있는 복도를 쳐다보았다. 나머지 집에는 누가 사는지조차 몰랐다. 이 여자랑도 안면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렇다고 저 집들까지 모조리 문을 두드려보고 상황을 얘기하고 전화를 요구하는 짓은 더 이상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새가 전화선을 잘라버리지 않았기만을 바라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못 쓰게 되버렸다면 그 때 다른 집을 찾아가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짹짹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리저리 몸을 치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기력이 다했구나 싶은 마음에 바로 방으로 들어가보니 새는 몸을 축 늘어뜨린 채로 부동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상태를 확인했다.
  제일 피해를 입은 부분은 가로로 길게 뻗은 서랍 위에 올려놨던 물건들이다. 운 좋게 한두개 정도는 서랍 위에 그대로 있었지만 바닥으로 떨어져 못 쓰게 되버린 것들이 대다수였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은 전화기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어쩌면 제일 피해를 크게 입은 것일지도 모르는게 전화기 자체가 완전히 뭉개져있었다. 이 망할 거대새가 멋도 모르고 밟아 짓눌러버린 모양이다. 결국 다시 다른 집에 부탁을 하러 가봐야되나 생각한 순간, 혹시 모르는 마음에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갖다대보았다.
  뚜-뚜-뚜-뚜…
  평소에 전화를 걸 때마다 듣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간 그 소리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정말 되는건가 싶어 다이얼 버튼을 눌러보았다. 경찰에 전화해야 되니까 112로 걸면 되나? 하고 1자를 누르려는데 버튼이 생각보다 잘 안 눌러진다. 힘을 좀 더 준 뒤에야 턱- 소리가 나면서 번호가 입력됐다. 다시 1을 누르고 2까지 누르고 나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새는 지쳐서 잠들어버린건지 시선을 주지 않으면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침대 옆 바닥에 떨어진 베개를 주워 오른손으로 꽉 쥐어잡았다.
  뚜우우- 소리가 한 8번 정도 반복되고 난 후, 드디어 기다리던 경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네, 경찰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막상 그 목소리를 듣고 나니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지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바로바로 말해주는게 좋을까, 아니면 좀 어중간하게 둘러대서 어떻게든 일단 오게만 만드는게 좋을까? 계속 이렇게 생각만 하는 것도 실례가 될 것 같아서 나는 급하게 후자를 선택했다.
  "저기, 지금 저희 집으로 경찰 좀 최대한 많이 보내주세요. 급한 일입니다."
  [정확한 사유를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똑같은 반응이다. 순간 아까 전 그 아줌마와 대면했을 때의 기억이 오버랩되서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불러와야만 한다. 그런데,
  "아, 그러니까…"
  말이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설명하면 될텐데 왜 이렇게 입이 헛돌아가는 것일까.
  [다짜고짜 경찰을 많이 보내달라고만 하시면 저희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말씀해주세요. 집에 도둑이라도 들었습니까?]
  "아뇨. 그건 아니고요. 그러니까…"
  중요한 임무를 맡은 내 입장에서도 참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아까 그 아줌마랑 대화했을 때 처럼만이라도 나온다면 문제 없는데 뭐가 문제가 된다고 이렇게 말이 안 나오는 것인지 나로써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 새가 한 마리 있는데요."
  [새요?]
  "네. 새요. 근데 이 새가…"
  [새가 공격적입니까?]
  "좀 공격적이긴 한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요. 그러니까…"
  [빨리 좀 말씀하세요. 경찰이라고 뭐 시간이 널널하기만 한 줄 아십니까? 얘기를 제대로 해주셔야 저희도 빨리 준비해서 출동할 수 있습니다.]
  "………… 엄청 커요."
  [뭐라고요?]
  "엄청 크다고요."
  [뭐가요?]
  "새가요."
  [새가 엄청 크다고요?]
  "네, 새가 존나 커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크다고요. 진짜 씨발 존나게 커서 벽을 허물지 않으면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을 정도로 크다고요! 아직도 상황 파악 안 돼요?"
  짹짹-
  그 순간 결코 반갑지 않은 새소리와 함께 양 발이 내 등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것을 직감했다.
  "아, 씨발! 왜 이 타이밍에 깨고 지랄…"
  본능적으로 몸을 휙 움직이며 경계와 동시에 새를 향해 외쳤다. 수화기도 떼지 않고 그렇게 외쳐버려서 순간 나도 경찰도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경찰 쪽에서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다. 새는 나를 쪼아먹을 생각은 없는지 깨고 나서도 그저 자리에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나는 속으로 벌벌 떨면서도 그동안 달아올랐던 흥분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경찰이 다시 질문하기 시작할 때는 이미 거의 진정이 된 상태였다.
  [증명 가능합니까?]
  "네?"
  [사실 확인이 필요합니다.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바로 확인해서 인력을 보내겠습니다. 가능합니까?]
  "이 조따맣게 큰 새가 진짠지 증명하라는 거에요? 지금 제 말 못 믿는 겁니까?"
  [솔직히 물증을 파악할 수가 없으니 함부로 경찰들을 파견할 수도 없습니다. 단지 한 사람이 하는 말을 가지고 섣불리 보내는 건 경찰 측에서도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서요. 위치를 확인해봤는데 지금 그 쪽에는 인근 경찰도 없어서 확인차 보내는 것도 사실상 힘듭니다. 지금 보니까 바로 옆에 그 새가 있는 모양인데 직접 찍어서 보내주시면 최대한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경찰에게서 이메일 주소를 받고 허무한 심정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쩌다가 이렇게 사람들 간에 불신이 쌓이고 쌓여서 무슨 말을 해도 대번에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지게 된걸까. 그렇게 내가 신뢰가 없어보이게 생긴 사람인가 싶어 잠시동안 머리가 멍한 상태로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일단 전화는 끊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폰이 있다면 내장된 카메라로 찍어서 손쉽게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집전화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믿을건 디지털 카메라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안 쓴지 한참 돼서 어디에 넣어놨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우선 이 방의 서랍부터 샅샅이 뒤져보았다. 하나하나씩 열고 닫을 때마다 등 뒤에서 지켜보는 거대새의 시선이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신경쓰지 않다시피 하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나가겠다고 발버둥치면서 여차하면 사람도 몇 죽일 기세로 덤벼들었는데 지금은 또 왜 이렇게 온순해진건지 알 턱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저 남은 서랍들을 뒤적거렸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망연자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게 없다.
  이대로 카메라마저 못 찾으면 또 옆집들을 돌아다녀야 하는 신세에 처할 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모르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요즘 시대에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고(소문에 의하면 카메라 기능을 장착한 그 놈의 스마트폰인지 뭔지가 디카 시장을 다 먹어치웠단다), 카메라 용도로 폰을 잠시 빌리겠다고 하면 또 곱게 빌려줄지도 의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지금으로써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물어물어 빌려와서 빨리 찍어 보내지 않으면 나만 손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가려고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뭔가 작게 부욱거리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이 놈의 새가 또 뭔 짓거리를 저지르고 있나 싶어서 뒤를 휙 돌아봤더니 어느새 내가 방패 삼아 갖고 왔던 흰 베개를 빼와서는 구멍을 뚫어 안의 솜들을 주욱 빼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을 부리 안쪽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야! 그거 먹는거 아니야!"
  아무리 봐도 그 솜을 먹으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여서 나는 또 소리쳐버렸다. 새는 하던 짓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짹짹거렸다. 왠지 모르게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더 이상 이 방을 나가기 위해 발광을 떨지도 않았고, 마치 '지금으로썬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구나' 하고 체념이라도 한 듯이 모든 걸 받아들인 듯한 모습이었다. 이 방에 있을 때부터 그랬지만 여기가 이 거대새의 새장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카메라를 얻으러 옆집으로 가는 건 잠시 미루고, 나는 베개를 거실로 가져와 소파 위에 던져놓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배겟솜을 먹게 놔두느니 차라리 적당히 먹을만한 걸 던져줘서 나를 잠시동안이라도 순종하게 만드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주욱 둘러보다가 비닐에 싸여진 소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그것을 꺼내 그릇에 몇 근 덜어내고 방으로 향했다.
  나는 한 서너번 정도 썰어줘야 한 입씩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새는 덩어리 째로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그릇은 금방 거덜났다. 하지만 새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이 되는지 더 이상 짹짹거리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사람을 위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새가 먹을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문제없이 잘 먹는 걸 보고서 그나마 속이 좀 편해졌다. 이제 이 새는 내가 나중에 또 먹이를 줄 것이라 생각하고 당분간은 계속 온순하게 지낼 것이다.
  나갈 채비를 했다. 바로 옆집의 아줌마는 보나마나 문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집을 찾아가 카메라던 스마트폰이던 빌려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신발을 신어 현관문을 활짝 여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리가 들려왔다. 고음과 중저음을 왔다갔다 하는 이 소리는 나에게 결코 낯선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나오자마자 바로 옆의 복도 끝 창문으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소리가 나는 곳에는 소방차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근처에 무슨 일이 생겨서 차가 온건가 싶었는데 그 차는 이 아파트 바로 앞에서 멈춰있었다. 거기서 대원들이 몇 명 나오고 있었고, 근처에는 이 아파트나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몇 모여있었다.
  왜 우리 아파트에 서있는거지?
  그 답을 시원하게 해결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소방대원 몇 명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대원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혹시 전화로 신고하신 분입니까?"
  "네?"
  순간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화를 했어도 112에 했지 119로는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어떤 일로 여기에 왔는지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 게 전혀 없었다.
  "이 아파트에 엄청나게 큰 새가 있다고 해서 출동했습니다만. 혹시 알고 계십니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아까 헐레벌떡 달아났던 그 여자가 전화를 걸어준 것일까? 혹시나 싶은 그 생각은 잠시 뒤로 미루고 나는 상황부터 간단하게 설명했다.
  "네. 제 집 침실에 있어요. 너무 커서 차마 밖으로 뺄 수도 없는 상황인데 경찰에 연락하니 인증샷을 첨부해서 이메일로 보내라고……"
  말을 하다 말고 나는 순간 떠오른 게 있어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카메라 가지고 계십니까?"
  "카메라…요? 카메라는 없고 스마트폰은 있는데 어디 쓰실 일 있습니까?"
  "그럼 일단 들어갑시다. 그리고 그 스마트폰 이따가 좀 빌릴게요. 메일만 보내고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뒤이어 올라온 두 명의 대원까지 포함해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오는 침실 문을 가리켰다.
  "이 방입니다. 가서 한번 살펴보세요."
  대원 한 명이 먼저 달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들어가자마자 "어이씨, 잠깐만" 하고 본능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방을 빠져나왔고 그 목소리를 듣고 따라 달려간 다른 대원들이 방 안을 보자마자 식겁하고 한두 발 정도 뒤로 물러났다.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전기로 현재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고 나는 대원 사이에 달라붙어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한 세 명에게 동시에 물어봤지만 아무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대신 스마트폰은 있다고 그 중에서 두 명이 대답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대원 한 명에게서 스마트폰을 잠시 빌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대장이 걱정 어린 목소리를 내비쳤다.
  "어, 어, 조심하세요!"
  "괜찮아요. 이미 얼굴 많이 봐서 익숙하고 얘도 많이 얌전해졌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이곳저곳 만지작거렸다. 뭔가 화면은 슉슉 잘 넘어가는데 뭐가 어떻게 되는건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뒤에 있는 대장에게 폰을 보여주며 물었다.
  "카메라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됩니까, 이거?"
  "… 스마트폰 처음 쓰십니까?"
  "집전화 밖에 안 써요. 디카가 있었는데 잃어버려서 이걸로 찍어서 보내려고 하는데 당최 뭐가 뭔질 모르겠네요."
  대장이 폰을 건네받고는 손가락을 이리저리 놀리더니 5초도 안 돼서 나에게 돌려주었다. 화면을 보니 카메라임을 알 수 있는 간결한 인터페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밑에 사진기 버튼 보이죠? 그거 누르면 되요."
  새는 이제 사람이 보여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가만히 서서 우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아까처럼 문으로 달려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스마트폰을 양 손으로 잡고 들어 뒷면을 새에 향하게 했다. 방 안이 어질러져있어서 그런지 셔터 스피드가 낮아져 화면이 어수선해졌지만, 워낙 몸집이 큰 새라서 특별히 찍는데 지장은 없어보였다. 나는 대장의 말대로 밑에 있는 사진기 버튼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꾹 누르고 기다리니 삑-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찰칵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이 찍혔다. 사진은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하게 잘 나온 듯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잠시. 새가 갑자기 짹짹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빛을 느끼고부터 내심 불안함은 느꼈지만 꽤나 민감하게 반응한 모양이었다. 새는 뒤로 물러나려는 듯 발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짹짹거리더니 갑자기 속도를 내서 문 쪽으로 달려왔다.
  "어, 어… 어어!"
  "야! 빨리 빠져! 빨리!"
  나부터 시작해 대원들까지 공포 어린 목소리를 연발하며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맨 앞에 있던 나까지 방에서 나오자마자 톼악! 소리와 함께 새의 부리가 문 밖으로 튀어나오고 나는 그와 동시에 나자빠져버렸다. 부리는 내 어깨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쪼그라들었던 간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귀신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도 이거보단 덜 무서울 것이다. 단순히 놀래키는 공포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에 가까웠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 뻔 했다. 황소같은 기세로 달려오는 새의 부리에 적중당하면 맞은 부분이 결코 무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플래시 라이트가 낯설다고 하지만 온순해져서 다행이다 싶었던 찰나에 다시 죽기살기로 달려드니 소방대원이고 뭐고 지금으로써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부수고 나올 정도로 힘이 세지는 않으니까 일단 놔둡시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알아서 들어갈거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메일을 보내기 위해 카메라 프로그램을 껐다. 다시 이것저것 손을 놀려보니 네이버로 접속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이콘이 보였다. 아이콘을 누르자 화면이 전환되면서 다시 여러가지 아이콘들이 동시에 떴다. 그 중에 메일이라는 이름의 아이콘을 클릭하고 다시 전환된 화면에서 우측 상단에 있는 메일쓰기 버튼을 눌러 간신히 작성 화면으로 왔다. 여기까지 대략 2분 정도 걸렸다. 이제 글만 쓰면 되는구나 싶은 순간, 나는 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포스팅 공간을 터치하자마자 등장한 가상 자판을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컴퓨터 키보드와는 차원이 다른 입력 구조에 이걸 당최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머리를 굴려도 답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우선 작성은 뒤로 하고 파일부터 첨부하기로 결심했다. 파일 선택 버튼을 누르니 찍어둔 사진들이 주루룩 펼쳐졌다. 화면을 누르자마자 펼쳐지는 낯선 애니메이션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펼쳐진 것들 가운데 아까 전에 찍은 거대새 사진을 찾아 터치를 반복하니 파일이 손쉽게 첨부되었다. 여기까지도 대략 2분 정도 걸렸다.
  대원들은 내가 없는 사이에 뭔가 진중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새를 어떻게 밖으로 빼내야 하는가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제시되고 반박하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나는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었고, 한참을 듣다가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천장을 뚫어야겠습니다. 헬기를 공수해서 새를 그물로 감싸고 이송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지금 이 방 천장을 뚫겠다구요?"
  침실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직도 새가 부리를 내밀고 있어서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대장은 네, 라고 짧게 대답하고 말을 이었다.
  "여기가 2, 3층 정도였다면 벽을 뚫어서 바로 밖으로 빼낼 수 있을텐데 옥상 바로 밑이라서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을 듯 합니다. 경찰에 연락해서 얘기를 자세하게 해야될 것 같은데… 아까 경찰에 연락한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 메일에 사진 첨부해서 보낼거에요. 제가 타이핑을 못 하겠어서 그런데 좀 받아적어주세요. 사진은 제가 넣어놨습니다."
  대장이 폰을 넘겨받았다. 나는 메일에 적을 내용을 즉석에서 생각해 말해주었다. ㅇㅇ동 ㅇㅇ아파트 906호 침실에 사진에 보이는 바와 같이 커다란 새가 한 마리 있습니다. 현재 저는 소방대원과 같이 있고 이 새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 방법을 같이 모색하다가 저 침실의 천장을 뚫기로 결심했습니다(바로 위가 옥상이기 때문에 그 편이 나을 것입니다). 천장이 뚫리면 그물을 장착한 헬리콥터를 동원해 이송을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경찰과 함께 천장을 뚫어줄 전문 인력, 그리고 헬기까지 지원 부탁드립니다. 새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그물을 크고 탄탄한 걸로 준비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일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메일을 보냈다는 대원의 말을 듣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는 아직도 부리를 문 밖으로 내밀고 있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게 아닌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죽었나 싶을 정도로 움직임이 전혀 없었는데 여기서 보니 살짝 돋아난 털이 미세하게 떠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젠 정말 기력이 다한 모양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의 일을 돌아보면 짜증도 나지만, 막상 이제와서 보면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나서 정상적이지 않은 몸에 정상적인 삶조차 살 수 없는 상황이니 자신이 생각해도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가고 싶은거 다 알아."
  부리 끄트머리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새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너 여기서 내보내줄거야. 이 곳에서 나가게 해줄거라고. 여기서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너 도와줄거고, 내가 아까 줬던 고기보다 더 맛있고 영양가 있는 걸 먹으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어."
  벽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새의 눈동자는 시선을 나에게 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딱 몇 시간만 더 참아. 지금까지 참아온 것 만큼만 더 참으면 돼. 또 발버둥치면 우리도 곤란해지니까. 너도 나도 깔끔하게 해결을 보자고. 알았지?"
  나는 오른손 검지를 펴서 나를 바라보는 새의 눈을 가리켰다.
  "넌 자유를 얻고, 난 원래대로 돌아가고."
  새와 나 자신을 번갈아 가리킨 제스처는 물론이고 내가 방금 전에 했던 말까지도 새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새는 부리만 쑥 내민 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대장이 내 옆에 와서 서있었다. 거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진작 물어봐야 했던건데, 왔을 때부터 이랬습니까?"
  "제가 왔을때는 바닥에 깨진 알껍질이 널부러진 상태였어요. 여기에 처음 있었을 땐 아직 부화조차 하지 않았다는건데……."
  "아마 당분간 조사 인력이 여기를 자주 찾아올겁니다. 새를 이송시키는데 성공하면 저 알껍질들도 수거해가겠죠. 근데 이거 참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뭐가요?"
  "새 크기가 이 정도면 알도 분명히 컸을 거 아닙니까. 근데 이 방에는 어딜 봐도 이 새만큼 커다란 알이 들어올만한 공간이 없었어요. 어쩌면 처음에 여기 들어왔을 때는 평범한 새알이었는데 어떤 문제가 생겨서 팽창을 했다던가…… 조금은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는 당연히 모르고, 솔직히 지금으로써는 알고 싶지도 않다. 대장 말대로 조사원들이 몇 번 다녀가다가 나중에 결과를 어떻게든 밝히게 될 터. 궁금증은 그 때 가져도 늦지 않다. 지금은 이 새를 밖으로 꺼내는 게 급선무다.
  "이거 벨소리 아닙니까? 이 방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대장의 목소리에 이어서 뒤늦게 들려온 집전화 벨소리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군진 몰라도 받으러 가야 하는데 새가 가로막고 있으니 이걸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순간 망설여졌다. 이내 나는 아슬아슬하게 내 몸보다 조금 더 작은 구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다행히도 새가 뭔가를 느꼈는지 몸을 뒤로 조금 빼내 바로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집전화 앞으로 달려가 수화기를 낚아챘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내가 아는 목소리였다. 몇 마디 주고 받고 바로 끊은 다음 나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장에게 외쳤다.
  "곧 있으면 철거 인력 도착한댑니다. 준비하고 계세요!"

 
* * *


  "…… 그래서요?"
  "그 이후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게, 정말 계획했던 대로 순탄하게 흘러갔어요. 여기 보면 알겠지만 진짜로 천장을 뚫어버렸고 그물을 이 안으로 떨어트려서 새를 들어올리는 데도 전혀 문제 없었어요. 바닥 뚫을 때 사용하는 드릴 비슷한 걸로 천장을 뚫어서 작업하는 동안 진동도 심하고 부스러기도 계속 떨어졌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그 거대새 녀석은 침착하게 가만히 있더라구요. 물론 처음에는 좀 움찔하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댔는데 소방대원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못 움직이게 잡아주니까 그대로 가만히 있더라는거죠. 그물로 포획되서 조금씩 위로 올라갈 즈음에 마지막으로 그 새의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그것 참 가슴이 찡한 거 있죠. 막상 보내려니까 아쉽기도 하고……"
  "뻥 까시네."
  "헐?"
  "천하의 웬수같은 놈 만났다는 듯이 짜증내고 그러더니 이제와서 가슴이 찡하다 그러면 누가 믿어요."
  이렇듯 이 여자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신뢰감을 내비치지 못하는 눈치다. 잠깐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 119에 전화를 걸어준 건 그녀였다. 딱히 크게 도움을 주지는 못한 소방대원들이지만 그 사람들한테서 폰이라도 안 빌렸으면 그렇게 순탄하게 진행이 가능했을지도 솔직히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좀 짜증나기는 해도 나름대로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고마운 이웃이었다.
  "근데 천장은 그냥 이렇게 놔두는거에요?"
  "보수해주러 올거에요. 물론 공짜로. 여기 바닥에 널부러진 것들도 무상으로 다 바꿔주면 좋겠는데 전화기만 바꿔준대요."
  "바랄 걸 바라야지. 그건 다 본인 탓이잖아요."
  "그게 왜 내 탓이에요? 다 그 거대새가 널부러뜨려서 그런거지."
  "지진이 나서 다 떨어져버려도 지진 탓으로 돌릴거에요? 애초에 안 떨어지게 관리를 잘 했어야지. 쯧쯧…"
  "…… 아무튼, 고마워요."
  "뭐가요?"
  "전화 걸어줬잖아요. 아무런 말도 없이 집으로 들어가버려서 사람 오해하게 만든건 좀 아쉽지만 나름대로 신세 지게 돼서 그러는거에요."
  "원래 우리 같은 사람들이 다 그래요. 솔직히 새가 그렇게 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쪼아먹힐까봐 두려워서 바로 집으로 뛰어들어간던데 그거 절대 내가 겁이 많아서 그러는거 아니에요."
  잔뜩 정색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까 어이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순간 아주 살짝 웃음이 터져나오려고 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녀는 다행히도 눈치채지 못했다.
  여자를 옆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문을 닫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뭔가 찝찝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기분이 묘하게 맞물렸다.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무마하기 위해 나는 거실로 향했다. TV마저 침실에 있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 물론 이 정도면 전화기랑 같이 보수받을만도 하지만 몇 년째 쓰면서 부쩍 친숙해진 녀석이었다.
   리모콘의 빨간 버튼을 누르자 핑- 소리가 나면서 전원이 켜졌다. K사 채널로 돌려보니 한창 뉴스를 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뒤늦게 카메라맨과 기자가 와서 인터뷰를 요청했던 걸 생각하면 오늘 안에 거대새 사건이 뉴스로 짤막하게라도 보도될 터였다. 하필이면 그 기자가 어느 사에서 왔는지를 얘기해주지 않아서(보통 마이크에 방송사 로고가 박혀있는걸로 아는데 그마저도 없더라) 괜시리 궁금한 마음만 커져 주요 3사를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가 익숙한 장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노을진 하늘을 배경으로 헬리콥터 한 기가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헬리콥터의 밑에 그물로 감싸져있는 무언가가 매달려있었다. 노을빛의 후광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어제 봤던 그 거대새였다. 그 장면이 나옴과 동시에 익숙한 기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헬기의 도움을 받아 새 한 마리가 어딘가로 이송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새지만 자세히 보면 그 몸집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이 거대한 새는 부화한 지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은 아기새입니다. 종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종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거대새가 갇혀있던 내 침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인터뷰를 요청했던 그 기자의 얼굴도 같이 나왔다.
  [아기새가 태어나 3시간 가량 동안 갇혀있던 곳입니다. 유일한 외부 통로인 창문조차도 굉장히 작아 부화하지 않은 알 상태로 이 곳에 놓여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방대장이 의문을 제기했던 점이기도 하다. 그 정도 몸집의 알이 그 상태 그대로 방에 들어온 건 절대 아닐 것이다. 대장 말마따나 새가 어찌저찌해서 들어와 침실에 알을 품어두고 갔는데 이게 어떤 요인으로 인해서 팽창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예측이라 하기엔 너무 소설에 가까웠다. 현장 브리핑이 끝나고 이어서 로우 앵글로 찍은 내 상반신이 나타났다.
  [ㅇㅇㅇ (최초 목격자) : 딱히 방에 뭘 해놓은 것도 아닌데 어딜 좀 나갔다오니까 알에서 부화한 상태로 그렇게 있더라구요. 세상에 별의별 커다란 게 다 있지만 저렇게 큰 아기새는 처음 봤어요.]
  그 다음부터는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원인은 물론이요 새의 정체마저 확인이 되지 않은 마당에 그저 '이런 일이 있었다'는 식의 짤막한 뉴스에 불과했다. 그 친구가 어지간히 기삿거리에 목말라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나는 TV를 껐다.
  그 새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사육장에서 관리를 받고 있거나, 아니면 이것저것 검사하고 나서 바로 자유롭고 안전한 곳에 풀려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미와 함께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불쌍하지만 갑갑한 새장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지금이 훨씬 나을 것이다. 담당자들이 충분히 잘 챙겨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새가 자유를 찾음과 동시에 나는 이제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똑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고 똑같은 식단을 챙겨먹고 똑같은 시간에 잠을 잘 것이다. 다만,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어왔다. 그 느낌을 말로 설명하긴 힘들었다. 어차피 그것도 살아가다보면 또 하나의 일상이 되어있을 터.
  침실도 대충 다 정리했다. 이불과 베개의 뜯어져나간 부분도 오랜만에 바늘을 동원해서 적당히 꿰메는데 성공했고, 케이스가 깨져버려 못 쓰게 된 것들은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전화기 교체도 오늘 안에 해주러 온다 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났다.
  천장은 급한대로 나무 판자를 이용해 뻥 뚫린 부분을 막아놨다. 딱히 세세하게 다듬어놓고 간 것도 아니고 그냥 판자 몇 개만 저 위에 탁- 하고 올려놓은 것 뿐이라서 보기보다 상당히 허술했다. 혹시라도 보수하러 오기 전에 비가 와르르 쏟아진다면 또 한번 고생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오, 하늘의 신이시여, 제발 오늘만큼은 비를 뿌리지 말아주옵소서, 하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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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수능을 끝내고 또 다시 단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작품은 수능 보기 두 달 전부터 쓰기 시작해서 수능이 끝난 바로 다음날,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농업인의날)에 초고를 끝낸 단편입니다. 역시나 이전에 올렸던 <그믐달>과 같이 이벤트 참가작이고 주제는 '케이지 속의 새'였습니다.

상당히 쓰는데 산전수전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믐달도 기한 내에 완결내지 못하고 한 주를 더 써서 간신히 초고가 나온건데 이것도 같은 길 가는거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면서 많이 좌절도 했습니다. 스토리부터 한 다섯번 정도 갈아엎고서야 조금씩 진전이 온답시고 이런 소설을 써내게 됐는데, 일단 어찌저찌 완결은 냈네요. 그렇다면 결과는? 처참합니다. 아직 결과는 안 나왔는데 분명히 처참할거에요.

소재는 정말 대박 왕건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소재로 현대판 앵그리버드 소설을 쓸 수도 있을테고 여러모로 재기발랄한 설정이었는데 저는 그걸 갖다가 차마 평가도 못하게 만들 정도로 평범한 소설을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농담 삼아 후속편으로 진짜 앵그리버드를 써볼까요? 하고 제안해본적이 있는데 설마를 현실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차라리 그런 소설을 쓰는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상당히 큰 작품이에요. 이벤트에서 2등 이상을 하면 혜택이 주어지는데 지금 이 수준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어요. 퇴고를 하고 싶지만 쉽게 건드려지지도 않아서 더 걱정..

ps. 제목이 달랑 '아기 거대새의 습격'이었다면 아마 순위부터 한두 단계는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뒤에 '그 이후'라고 붙여놓은 건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런 평범한 이야기에 저런 제목을 붙여놓으면 안 되지.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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