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 코드 | 던칸 존스 연출 | 제이크 질렌할, 베라 파미가, 미쉘 모나한 주연 요즘들어 '적당히'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씁니다. 그 어떤 문제에도 저 세 글자가 들어가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지거든요. 밥도 적당히 먹어야 체할 일이 없고 공부도 무작정 많이 하기보단 적당히 해야 더 효율이 생기고 정치도 도를 넘어서지 않고 적당히 해야 나라가 원활히 돌아가는 것처럼 뭐든지 적당해야 탈이나 찝찝함이 안 생깁니다. 영화도 마찬가집니다. 잘 만든 영화라 칭송받으려면 드라마(시나리오)에도 적당한 매끈함과 탄탄함이 필요하고, 대사는 인위적이지 않고 적당히 자연스러워야 하며, 혹여나 액션 장면이 있다면 찝찝함이 남지 않도록 적당히 깔끔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무리도 에둘러 넘어가지 않고 적당하게 지어줘야 ..
셜록 홈즈 | 가이 리치 연출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레이첼 맥아담스 주연 이 영화도 분명 극장 개봉할 당시에 꼭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은 놓쳐버렸고 그 뒤에는 자연스럽게 'TV에서 할 때 봐야지' 하고 벼르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사실 TV에서 방영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 조금 된 걸로 아는데 오늘에서야 제대로 보게 되었네요. 이미 아이언맨 시리즈로 낙인이 딱 찍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 사람만 딱 믿고 조금은 피곤한 와중에 감상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아이언맨이나 셜록홈즈나 예고편으로 봤을 때는 그냥 똑같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 보여서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어울리겠어?' 하고 걱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이내 몇 분 보고 나서 그대로 집어삼켰습니다. 진..
가벼운 드라마나 시트콤 스타일이 아닌 이상 10분 이내의 단편에서 신경을 자극하는 기가 막힌 스토리를 기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실상 무리에 가깝습니다. 러닝타임이 20분 정도 된다면 모를까요.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저만큼은 단편을 볼 때 영상이 얼마나 맛깔나게 잘 만들어졌는가를 중점으로 삼습니다. 물론 그냥 단순하게 '영상이 보기 좋게 나왔는가' 뿐만이 아니라 '그 작품에 깔린 세계관과도 잘 어울리는가'를 생각하면서 보게 되는데요. 그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적어도 수작 이상의 완성도는 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종말 이후의 짧은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그 시작부터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Life After People에서나 봤던 녹음으로 둘러싸인 도시들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는 모습에서부터 영상에..
Poussière from Poussiere LeFilm on Vimeo. 검색해서 안거지만 제목인 푸시에르는 불어로 먼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주인공도 먼지입니다. 작품에서는 먼지가 어느 날 갑자기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면서 겪는 짧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더불어 먼지가 품은 무언가에 얽힌 슬픈 사연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어디까지나 단편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소재의 참신함을 제외하면 오히려 무난한 느낌에 가깝습니다. 제가 마음에 들었던 건 귀여운 먼지 캐릭터와 함께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영상의 색감입니다. 따스한 빛이 스며드는 창고, 어둑하고 쓸쓸한 쓰레기 봉지의 내부, 그리고 그 곳에서 우연히 탈출해 볼 수 있었던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마을의 전경까지. 그런 모..
El Empleo / The Employment from opusBou on Vimeo.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금은 희망적인, 유토피아와도 같은 미래에 대해 이것저것 상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은데 이젠 그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냉정한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는 모습은 이제 특별히 낯설지가 않습니다. 저도 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올해로 성인이 됐고, 슬슬 일자리에 욕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서있다보니 이 작품을 보는 시각도 새삼 남달라지더군요.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는 상상일지도 모르지만, 작품 내내 묵묵하면서도 보는 사람으로써 압박감을 주는 분위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인력이 되어주는 경우는 지금도 많이 있지만, 이 작..
일단 동생의 몸부터 챙겼다. 제일 따뜻한 자리라고 생각하고 뉘었는데 불안함은 채 가시질 않았다. 거의 맨 땅에 가까운 바닥이었지만 그래도 바깥보단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어 누워있는 동생의 몸에 살포시 덮어주었다. 그제야 약간 안심이 되었다. 내 몸에서 오들오들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럭저럭 참을만 했다. 연약한 몸에서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가여움과 동시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여기까지 업고 오는 동안 바로 뒤에서 들려오던 그 숨소리인데 지금이 훨씬 더 가쁘게 들렸다. 보온병을 꺼내 따뜻한 차를 먹여주고 싶었지만 동생은 앉을 힘조차 없어보였다. 나는 동생의 바로 옆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나무집은 생각보다 튼튼했다. 멀리서 봤을 땐 거센 눈발에 맥을 못 출 것처럼 허름..